자본주의 이후에야 공산사회가 도래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기반에서 그는 자본주의는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때문에 붕괴될 수 밖에 없고, 공산주의는 역사 발전의 종점에서 영원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소련을 대표하는
‘사회 민주화’가 일상적인 구호로 자리 잡았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사회 민주화’와 불가분 하다는 선언이 나오면서 소비에트 대의원의 복수선거제와 완전한 비밀투표가 제창되었다.
고르바초프가 직접 쓴「페레스트로이카」에서 당시의 위기에 대한 그의 진단과 해결책이 제시되어 있다.
선거제도의 개혁, 공산당 및 입법부의 정비, 대통령제 도입 등 당시 상황으로는 획기적인 정책을 펼친다.
(1) 선거제도의 개혁
고르바초프는 1987년 1월 당 중앙위 전위회의에서 선거구의 확대 및 복수 후보제의 도입을 제의했다. 선거제도를 토의하는 과정에서 종전의 제도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
소련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 했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일부에서는 소련의 와해를 공산주의의 실패로 받아들여 자유민주주의 승리와 이데올로기대결의 종언이 호언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비민주적으로 전개된 볼셰비키적 실천의 좌절을 곧바로 사회주의의 실패로 보는 부정적인 측
사회주의 혁명이 시작된 원인과 그 결과에 대해 검토하려 한다. 장기시간대의 사회변동은 국가의 형성과 더불어 이론의 적용이 어떻게 생성되고 발전되지는 그리고 소멸 등의 경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장기시간대의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사회주의는 위기인가 붕괴인가를
소련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 했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일부에서는 소련의 와해를 공산주의의 실패로 받아들여 자유민주주의 승리와 이데올로기 대결의 종언이 호언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비민주적으로 전개된 볼셰비키적 실천의 좌절을 곧바로 사회주의의 실패로 보는 부정적인
소련 공산당은 좌파 이념의 본거지로써 최초의 마르크스 이념의 의한 국가로써 역할을 누려왔다. 그래서 구소련의 붕괴는 한 공산국가의 붕괴가 아닌 공산진영의 몰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소연방의 붕괴는 과거 역사에 걸쳐 있어 왔던 한 국가(또는 왕조)의 생성 및 소멸 과정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과정에 훨씬 높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 국가두마 (State Duma, 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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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두마는 45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2은 지역구에서 선출되고, 1/2은 정당명부제를
통해 지지율 5% 이상을 획득한 정당에게 비율에 따라 의석을 나누어 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두마의원들의 임기는 4년이다. 법률
사회주의 양 진영 간의 냉전체제 또한 붕괴하였다.
본 발제문에서는 먼저 소련의 몰락 원인으로 고르바초프 집권 전후 소련의 대내・대외적 상황과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 소련붕괴의 과정인 동구권의 민주화와 소련의 해체 및 냉전의 종식, 마지막으로 이에 대한
공산주의 경제 이론의 출발점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기업가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재투자를 해야 하는데, 재투자를 하기 위한 조건이 자본 축적이다. 축적된 자본을 가변 자본이 아니라 불변 자본인 생산 설비에 투자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망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 마르크스 의 주장이다.